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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3-1

엄마가 죽고 14개월이 지난 겨울의 일이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꼭 물이 끓는 주전자 같았으나 코와 목 안 쪽은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목을 조를 정도로 목도리를 꽉 묶어봐도  한기는 가시지 않았다. 옆구리에 낀 종이 뭉치를 버릴까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손은 새로운 종이를 꺼내 붙이는 반복작업을 계속했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굵은 글씨로 프린트 된 문구는 이제 꿈에서도 보일만큼 익숙하다. 어쩌면 어른들의 말처럼 이 일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없는 컴컴한 집안이 관처럼 느껴져서. 엄마를 묻을 때와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흙을 덮는 마냥 자신의 위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게 싫었을 뿐이다.

“....”

손이 굳어서인가 테이프가 제대로 뜯기지 않았다. 조금 더 힘을 주자 플라스틱 통이 손 안에서 튕겨져 나가고 손가락에 날카로운 통증이 남았다. 몸을 숙여 떨어뜨린 테이프를 주우려고 했으나 자신보다 먼저 숙여지는 머리가 보였다.

“자, 받으세요. 손가락은 괜찮으신가요?”

남자는 웃으면서 테이프를 건네줬다. 솔직히 정말로 보기 드문 미남이라 무심코 넋 놓고 보고 말았다. 그 사이에 그는 반쯤 붙어 있던 종이를 떼어냈다.

“도와드릴까요?”

아뇨..감사하지만, 이라고 말하려고 할 생각이었다.

“범인을 알고 싶지 않으신가요?”

자리를 옮기죠. 그가 뒤돌았을 때 그제서야 레이스와 프릴이 잔뜩 달린 양산을 쓰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눈도 비도 오지 않는데. 양산만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것도 없이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정신을 차렸을 때는 따뜻한 카페 안이었다. 

그리고 언제 왔는지 모를 여자는 트레이를 들고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았다. 서양 인형같은 옷을 입고, 이 정도면 굉장히 눈에 띄지 않나 싶어 주위를 둘러 보자 카페 안에 있는 것은 이상한 사람 둘과 자신 뿐이었다. 그녀는 내 앞으로 코코아가 담긴 잔을 밀었다.

“저는 루나, 이쪽은 티시포네. 당신을 도와줄 거예요.”

여자는 계속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에 큰 상처가 위압적이라 마주보기 어려웠다. 대신 고개를 숙이고 손난로처럼 머그잔을 감싸쥐었다.

 “범인을 찾을 수 있는 건가요.. ”

 “네. 아니. 이미 알고 있죠.”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때 신고했다면 살 수 있었을텐데.”

 

못 참고 일어나자 테이블이 흔들리며 티스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상대는 그저 웃으면서 올려다보기만 했다.

 

“알고 있으면...!”

“앉으세요.”

그는 통에 들어있던 스틱 설탕을 뜯어 자신의 잔에 넣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째.. 도로 자리에 앉았다.

 

“음~... 저희는 범죄 코디네이터지.. 자선 사업 단체가 아니라서요.”

“범죄 코디네이터..?”

"다른 사람의 꿈을 이루어주는 일이에요. 그리고 티시포네는 복수 전문. 가장 끔찍하게.. 가장 고통스럽게.. 가장 걸맞는 형태로..”

"사람을 죽인다는 건가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의 손으로 직접 하는 거죠. 증거를 찾아서 경찰에 넘긴다고 해도 고작 2~3년의 형을 받지 않으려나요. 돈이 있다면 더 짧거나.. 하지만 죽은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잖아요."

티스푼으로 커피잔을 휘젓는 것이 어쩐지 자신의 마음을 휘젓는 것 같았다. 잔 속의 작은 소용돌이처럼 안쪽에서 무언가가 거세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무언가 마시고 싶었으나 도무지 울렁거림이 잦아들지 않아 다시 잔을 내려놓았다. 복수란 단어는 따뜻한 코코아의 냄새보다도 달콤했다.

"자선 사업...이 아니라면 대가는요? 돈인가요?"

"저희는 원래 성공 후 전 재산의 절반을 받아가고 있지만 학생인 당신에게는 너무한 조건 아닌가요. 그러니 대신 몸을 받겠습니다. 장기라든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연극에 배우는 필수적이죠.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래요.. 목숨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는 여전히 느릿하게 커피잔을 휘젓고 있었다. 소용돌이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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